2019-07-20

 

밀리의 서재, YES24 정기구독권에서 공통적으로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가 올라왔다.

 

해당 책은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몇 번이나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유튜버 책읽는사자님께서 추천하는 동영상을 보고

읽기로 결정했다.

 

나는 책 내용을 한 번에 정리하는 글은 쓰지 않는다.

'나 책 읽었어요' 이런건 별로다

그럴 실력도 없다.

 

그냥 소소하게 읽어나가면서

마음깊이 다가왔던 구절과

짧은 나의 코멘트와 생각을 정리할 것이다.

 

 

시작!

 

 

[사무실을 나설 때 외과학교실 행정원 이진영이 카네이션 한 송이를 내밀었다.

전공의들이 준비했다고 했다.

쑥스러운 마음에 받아서 그대로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이국종 교수님의 성격이 보이는 재미난 구절이다.

 

[미국에서 연수받을 때 데이비드 호이트( David Hoyt)교수는 외래 진료는 추수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외래 진료는 죽다 살아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고, 내 지긋한 일상에서 실제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다.]

 

나는 미국 의학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좋아한다.

그 영화에서 주로 보았던 것은

수술실의 매력이었다.

마치 똑똑한 괴짜들의 완벽한 향현같이 표현된 모습이 많다고 느꼈다.

남들이 보는 외과의사들의 모습을 치켜세워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이국종 교수님은 내 지긋한 일상에서 실제로 보람을 느끼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

외래 진료시간 이라 표현한 점에서 정의할 수 없는 묵묵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 부인의 웃음이 희미했다. 나는 겸연쩍게 환자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왜 환자분은 같이 안 오셨어요? 환자분은 이제 일상생활 잘하시죠?

그 순간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소리 없는 울음이었다.

-애들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울음 속에 묻어난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한마디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왜요?

부인은 눈물을 계속 쏟아내고 더러는 삼켜가며 입을 열었다.

- 두 달 전에 갯바위에서 미역을 딴다고 나갔는데, 갑자기 큰 파도가 몰려와서 쓸어가 버렸어요.

너무 건강해져서 지난겨울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요.

짧은 탄식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노동자 계층의 중증외상 환자가 회복하여 업무에 복귀했다가

다시 다쳐 실려 오는 경우는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는 너무 빨랐고 너무 치명적이었다.

그는 이제 다시는 식구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내가 말을 잃은 사이, 부인은 소리 없는 분수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고,

사회의 현실이 명치를 치는 것 같다.

무슨 말을 더 붙일 수 있을까?

 

그들에게 더 좋은 직업은 선사하지 못하더라도,

조금씩만 , 여러 방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개선을 이끌어 내는게 , 아니 그럴 순 없을까?

같이 서로의 필요에 집중해줄 순 없을까?

나 혼자 살기에 너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는다, 안 될 경우를 걱정할

것 없다, 정 안 되면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그뿐이다.

나쁜 보직을 감수할 자세만 되어 있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다.

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상황에 밀려 해임되면 그만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단순한 논리였다.

바다 위에서 만난 병사들이 그와 같았고 대개의 뱃사람들이 그러했다.

그의 말들이 짙은 쪽빛으로 머릿속을 깊이 물들였다.]

 

 

처음 이국종 교수님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던 때였다.

공대 생활을 하며 피곤에 쩔어 사는게 지쳐서 

나보다 더 피곤하게 사는 사람을 찾으려는 웃긴 의도로 

유튜브에서 의대라고 검색했고 그러다 이국종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그 때 이후로 이국종 교수님의 무언가 모를 그 강렬함은

어린 나의 시각으로는 단순히 멋진 마이웨이로 다가왔다.

그런데, 커가면서 보는 이국종 교수님의 마이웨이는

주변의 마이웨이의 길을 걷는 사람과는 아주 다르다.

자기를 위한 마이웨이가 아니라

타협하지 않는 마이웨이였다.

'강한 의지'가 돋보였다.  

 

 

[ 그러나 간담췌 외과를 비롯해 모교 병원 외가의 어느 분과에도 취직자리는 없었다.

지도교수였던 외과 과장이 나를 불러 병원 내에 신설되는 분과인 '외상외과'를 권했다.

외상외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단 과장의 권유에 따랐다.

큰 수술은 성취감이 컸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외상외과를 선택했다. ]

 

최근, 나는 하던 연구도 그만두고, 지원하는 아르바이트는 아무리 단순 노무라 할지라도

다 거절 당했다. 과연 내 삶은 어디로 이끌어가지는 건가 너무나 두려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럴때 기억하려는 것은, 한쪽 문이 막히면 다른 한 쪽 문이 열린다는데,

나의 열린문은 어딘가 하며 너무나 생각을 많이했다.

지금 나의 이런 삶이 저 구절에서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만든다.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업인데도 환자들은 자꾸 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살려야 했으나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아서 더 알 수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임경수 교수가 미국 교표 출신 외상외과 의사가 1990년대에 3년 동안 만들어놓았다던 진료기록을 내밀었다. 나는 화석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의사는 한국에서 외상외과를 정착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떠났다고 했다. 나조차 한국의 현실이 지겹도록 비루하다고 느끼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방도를 찾아야 했다. ]

 

어제 보았던 다른 비즈니스 관련 책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때, 많은 인원이나, 큰 대기업에서는

이룰 수 없다. 너무나 다른 생각과 관료제와 느린 시스템으로 인해 그 아이디어는 묻히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시작은 '소수' 이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 나는 이국종교수님 정도면 서울대병원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브랜드 관점에서 교수님을 바라봤다.

이 책을 보면 교수님께서 의사의 길을 가지 못할 뻔 했던 사건과,

홀로 가야하는 길에서 우직하게 갈 수 있도록 교수님을 만든 사건들을 보게된다.

그리고, 교수님과 내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삶이 희망이자 내가 찾던 내 삶의 숙제의 해답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혼자가 되어야지만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혼자가 되기란 매우 어렵다 이것은 환경을 통해 만들어진 성향이다.

그러기에, 나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주변 사람들이 무시했다고 멈춰야 할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 길이, 지금은 아무 목적없는 굴을 파는 느낌이지만,

그 목적없는 느낌은 과연 남들의 시각으로부터 온 것은 아닌지,

사실, 나는 그 목적을 알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 시각에 맞추려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한반도 내에서 중증외상 의료 시스템을 국제 표준에 맞게 운영하는 이들은 주한 미군 의료진이 유일했으므로 그들과 같이 일했다. 외국의 유명 외상외과 석학들을 초청해 컨퍼런스도 열었다. 보고 배운 것들을 유지해보고자 애썼다. 몸부림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남들이 보기에는 지금까지의 관행과 관습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위험은 부상을 부르고 부상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험도와 돈벌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늘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내 꼴이나 환자의 사정이 다르지 않는다.]

 

[그들이 내게 보내는 경고는 잦았고 그것은 나를 옥죄어왔다.]

 

 

[나중에는 심평원의 삭감 청구서가 거대한 칼날이 되어 나를 향했다. 처음부터 나를 정조준하여 날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병원으로 날아온 큰 금액의 진료비 삭감 청구서는 병원 내 여러 행정부서와 보직교수들의 최종 결재를 거쳐, 내게는 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나는 틈틈이 심평원에 사정하는 글을 써 보냈다....교과서의 내용을 통째로 복사해 첨부했다... 사유서는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읽었다 해도 정상참작은 요원했다. 심평원 내 심사위원 중 외상외과를 전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세계적으로 쓰이는 외상외과 교과서의 표준 진료 지침대로 치료했다는 내용의 자료를 수백 번 제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과 무관하게 잘 지내는 방법은 원내 정치력에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아둔했다.[

 

[학교에서 주는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내가 학교에 일부러 불이익을 안길 생각은 없었다. 외사외과 의사로서 교과서적으로 치료하면 환자가 살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원칙대로 하려 했을 뿐이다]

 

 

[내 뒷말을 해대는 교수,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 직원들의 이름이 들려왔으나 대응하지 않았다. 병원과 의과대학 내에서 조용히 수면 아래로 잠기려고 했고 사람들과 만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외상외과 특성상 다른 임상과들과의 협진은 불가피하여 나는 계속 사방에 사정해야 했다. 비참함은 배가되었다. 비루한 인생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이 현실에 이가 갈렸다.]